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였다. 그래도 투표 열기는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75.8%의 투표율이다. 한겨울에 펼쳐진 선거치고는 너무나 강렬했다.

필자는 오후 5시쯤 투표장에 나갔다. 투표소는 공원 중앙의 '만남의 장소'에 설치돼 있었다.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렸던 마지막 잎새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매서웠고 발가락도 시렸다. 기다리는 행렬은 200m 정도. 연령층도 다양했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발을 동동 거리는 젊은 부부에서부터 허리가 휜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고루 섞여 있었다.

투표장 안에서 투표용지를 기다리는 시간도 제법 걸렸으나 지루하지 않았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성(聖)스러움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기표소의 캐치프레이즈에 힘이 솟았다. 그렇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투표율과
방송 3사의 출구조사 발표가 궁금해서다.

<박근혜 후보 50.1%, 문재인 후보 48.9%>

18:00시를 알리는 시보와 함께 KBS·MBC·SBS 방송 3사는 자신감 넘치는 출구조사 결과를 전국에 내보냈다. 하지만, 긴장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차이(差異)가 박빙인 1.2%에 불과해서다. 개표가 시작되자 출구조사보다 차이가 벌어진 흐름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도 그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 당선유력.>

9시가 되자 방송 3사의 보도는 온 국민의 눈과 귀를 다시 한 번 모았다. 박근혜 후보 52.3%, 문제인 후보 47.3%라는 발표와 함께 '박근혜 후보 당선 유력'으로 판세가 굳어졌다. 개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표된 것이었지만, 이변(異變) 없이 결론이 났다.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께 드린 약속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시장에서 손을 잡아 주시던 분들-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행복시대,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자정 무렵 광화문 특설 무대에서 박근혜 당선자가 한 인사말이다. 뒤이어 문재인 후보의 인사말도 조용하게 전파를 탔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정권 교체와 새 정치를 바라는 여러분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박근혜 후보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짧고 무거웠지만 문재인 후보의 인사말도 의미 있는 한마디였다.

<박근혜 후보 51.6%, 문재인 후보 48.0%>

선거는 끝이 났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것도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다. 그러나, 승부(勝負)는 지금부터다. 승자(勝者)는 패자(敗者)들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포용(包容)해야 한다. 선거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을 위한 꽃을 피워야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花)'이다. 5년 후의 선거도 그다지 먼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