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서울 거리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단풍이 도시 전체를 수채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나무 가로수가 많은 여의도 길은 황금빛 보도(步道)였다. 이러한 길을 걷다보면 황금 터널을 지나는 듯 기분이 만점이었다.

모든 아름다움은 한시적이라고 했던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던 알록달록한 이파리들이 하나 둘 작별을 고하며 거리에 뒹군다.

생성과 소멸-. 이 모두가 자연의 섭리(攝理)이자, 삼라만상(森羅萬象) 어디에나 존재하는 진리다. 비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날씨가 추워지자 버려진 낙엽들이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낙엽(落葉)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지만, 프랑스 작가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의 표현이 걸작이다. 그는 낙엽을 긁어모을 때 '추억과 후회도 함께 모은다'고 했다. 그의 <이파리>라는 시(詩)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

"마른 잎들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노라/ 많은 추억과 또한 온갖 후회도 함께/ 북풍은 그 모든 것을 싣고 가나니..."

나쁜 추억과 후회가 바람 따라 날아가 버린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궂은 바람에/ 여기저기/ 정처도 없이/흘러 다니는/ 낙엽과도 같아라."

천재 시인 랭보와 함께 방황을 했던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Verlaine, 1844-1896)'의 시 <가을의 노래>도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다. 낙엽도, 인생도, 나라도 방황의 형국이기 때문이다.

낙엽은 쓸쓸함과 방황, 버림의 심벌로 거론되지만 마냥 버려지는 것만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에 의해 때로는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낙엽의 '쓸모'를 높이는 서울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실리적이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긁어모아 퇴비로 쓰고, 퇴비로 쓸 수 없는 이파리들은 악취 제거용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1년 동안 쌓이는 낙엽은 2-3만 톤. 이를 처리하는데 30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낙엽 중에서도 압권(壓卷)은 한 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비에 젖은 낙엽'이다. '비에 젖은 낙엽'은 오래 전 도쿄대학의 한 여교수가 명명해 유명해진 말이다. 비에 젖은 낙엽이 길바닥에 달라붙어 빗자루로 쓸어도 떨어지지 않듯이 '부인 옆에 꼭 붙어있는 처량한 은퇴 남편 신세'를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침 일찍 출근해 매일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샐러리맨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일에 쫓겨 특별한 취미도, 노년에 대한 설계도 없이 퇴직을 맞은 은퇴자들을 빗댄 말이다.

경제 불황으로 삼성 · 현대차 · SK 등 재벌 기업들이 계열사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에 따라 명퇴자들이 봇물을 이룰 태세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올해는 인사태풍이 더욱 혹독할 것 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서 '비에 젖은 낙엽'이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비에 젖은 낙엽'은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내 가족의 이야기이며, 은퇴한 남자들의 비애(悲哀)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낙엽의 '쓸모'를 높이는 솔로몬의 지혜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