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야의 광어회

필자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한 곳을 지목하고 무릎을 쳤다.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에 있는 개야(芥屋)라는 곳이다.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는 후쿠오카(福岡) 서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현해탄(玄海灘)에 돌출해 있는 조그마한 반도이다. 그 곳은 작은 어촌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가지 않은 외진 곳이다. 필자가 일본 친구들과 자주 들렀던 곳이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나 생선회가 싸고 맛이 있어서 매력적인 어항이다.

"푸른 바다 위 유유히 흐르는 돛단배를 바라보면서 바닷바람에 젖어 상념을 털어버리는 낭만의 바다가 아닙니다. 아마도 오늘 같은 날씨에는 검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성난 바다일 것입니다."

일행들은 필자의 말을 흘려버리고 바다를 향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듯했다. 필자는 하카다(博多)역에서 '마에바루(前原)'행 기차표를 샀다. 지하철과 연계된 교외선 열차다. 이동 거리는 약 50분 정도. 기차는 도심의 지하를 달리다가 하늘과 산과 집이 보이는 지상위로 올라갔다. 기차는 해안선을 따라 초승달 같은 곡선을 그리며 달렸다. 바다가 보이는 순간 모두들 환호성을 울렸다. 소나무 숲 사이로 아름다운 바다가 길고 넓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회의 온갖 상념이 송두리째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한 느낌도 작용했을 것이다.

빗속을 뚫고 바다로-

'마에바루(前原)' 역에 내리자 다소 소강상태였던 비가 퍼붓고 있었다. 역 플랫 홈에서 택시 승차장까지 5m의 거리도 뛸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장대비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 없는 일- 용기백배 승차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향해 돌진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흠뻑 젖은 몰골(?)을 쳐다보며 서로가 박장대소했다. 택시 운전사는 '이 빗속에 보잘 것 없는 어촌에 가는 이유'를 물었다.

"독일에서 온 손님 -일명 파리의 여인- 이 현해탄을 보고 싶다고 해서 가까운 개야(芥屋)에 가려고 합니다. 아주 소박한 횟집도 있구요."

운전사는 엊그제 후쿠오카의 야마가사(山笠) 마쓰리(祭)에 참가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후쿠오카 시민들의 축제만이 아니라, 인근 지역민이 동참하는 축제라는 사실도 중요했다. 운전사는 물에 잠긴 시골길을 어렵게 달리면서도 '요리사의 길을 걷다가 힘에 겨워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고, '아내와 이혼한지 5년이 됐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빗줄기처럼 거침없이 쏟아냈다.

"일본 여자들이 옛날과 달라 매섭고 차갑습니다. 결국, 도장을 찍고 말았습니다."

택시는 빗속을 뚫고 해바라기 꽃이 만발한 논길을 지나 어항(漁港)과 인접해 있는 소박한 횟집에 내려놓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우산을 들고 서서 반갑게 맞이했다.

고기잡이 배가 정박해 있는 개야어항(芥屋漁港)

현해탄(玄海灘)에 담긴 역사와 문화

현해탄(玄海灘)은 규슈(九州)와 쓰시마(對馬島)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이 해협은 바다가 얕은 편이나 파도가 거칠고 검기 때문에 현해탄(玄海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규슈 북서부의 바다에 검을 현(玄)을 쓰는 이유는 '현무(玄武)가 북쪽, 주작(朱雀)이 남쪽을 가르킨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현해탄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애절한 사연들을 듬뿍 담고 있다.

"그야말로 검푸른 현해탄은 제국주의 시대에 한 · 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흘렀다. 현해탄(玄海灘)이라는 '검은 바다가 소용돌이친다'는 지명 자체가 후쿠오카 앞의 특정 지명을 뜻하는 말인 바, 한 세기가 흐르면서 어느 결에 보통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바다의 전문가이자 민속 · 문화의 전문가인 주강현(朱剛玄) 박사가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라는 책에서 정의한 현해탄의 개념이다. 현해탄의 거친 파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거칠게 출렁대고 있다. 현해탄의 아픈 사연은 임화의 시에도 절절히 배어있다. 다시금 <현해탄>의 일부를 옮겨본다.

개야(芥屋)에서 바라 본 현해탄

현해탄을 가르키는 파리의 여인-

때마침 비가 멎었다. 그러나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현해탄(玄海灘)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방파제를 세차게 때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와 맞먹었다. 평소와 달리 어선들도 방파제 안쪽으로 숨어버렸고, 낚시꾼도 보이질 않았다.

"해안의 돌도 현해탄을 상징하려는 듯 검은 색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이키시마(一岐島)가 보입니다. 이곳 개야(芥屋)가 이키시마(一岐島)->쓰시마(對馬島)->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셈이죠."

5대 째 여관 겸 횟집을 하고 있는 우메야(梅屋)의 주인 할머니의 말이다. 비가 멎자 필자 일행은 바닷가로 나가 해변을 걸었다. 가까운 곳에 '개야 대문(芥屋大門)'이라는 관광지가 있으나, '날씨가 나빠서 유람선이 출항하지 않는다'고 했다. 개야대문(芥屋大門)'은 거친 파도에 의해 저절로 생성된 높이 64m, 깊이 90m의 자연 동굴이다. 길이가 180m 정도이나 통로가 좁아 10m 밖에 들어갈 수 없는 현무암 동굴이라고 했다.

芥屋大門의 후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현해탄의 방파제-

출저: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