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暴炎)의 8월이 시작부터 뜨겁다. 서울의 밤 최저 기온이 27.8도까지 치달았다. 이 정도면 밤이 아니라 한 낮의 기온과 맞먹는다. 열대야(熱帶夜)의 지속 기간도 연일 기록 갱신이다. 기상청은 '열흘 연속 열대야 현상이 이어진 것은 2000년 이후 올해가 가장 긴 기간이다'고 했다.

 열대야는 서울뿐만이 아니다. 서귀포, 부산, 인천 등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방도시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이리저리 잠자리를 옮겨 봐도 짜증만 더해질 뿐, 도저히 잠을 잘 수 가 없다. 공포의 대상인 태풍이라도 다가오길 기대했지만, 태풍 또한 방향을 틀어 중국으로 가버렸다.

 열대야(熱帶夜)와 함께 런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올림픽 경기가 밤잠을 설치게 한다. 방송사 마다 앞을 다투어 내보내는 올림픽 중계는 폭염에 못지않은 '잠 못 이루는 밤'의 원흉(?)이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는 더위처럼 짜증이 나지 않는다. 자국의 명예를 걸고 뛰고 있는 젊은 선수들의 땀방울 맺힌 얼굴이 하나같이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 둘 불어나는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 소식과, 축구의 4강 진출 소식은 더위를 날려버리는 일급 청량제였다.

 그러나, 서민(庶民)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곳곳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경제 문제다. 서민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열대야나 올림픽 같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잠을 자고 싶은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不眠症)에 가깝다. 

 뉴질랜드의 문화사학자  '엘뤼네드 서머스 브렘너(Eluned Summers Bremner)' 교수는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책에서 "불면증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쉬우나, 사회 · 문화적 특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불면이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날의 불면은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야기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富)를 거머쥐면서 이것을 잃을까? 하는 모습들, 더 많은 부를 쟁취하기 위해 밤을 파괴하면서 일하는 모습들,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강박관념 등이 불면의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불면의 조건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제적인 이유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서민으로 분류되는 일반인들이다. 졸지에 일반 가구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일시에 야기될 것 같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KDI)은 5일 "현재의 소득으로 원리금상환을 감당할 수 없는 '실소득 마이너스 가구'가 돈을 빌린 전체 가구 중 3분의 1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실소득 마이너스 가구'는 부득이 연체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들의 연체는 은행 등 채권기관의 손실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들 가구들이 집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해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발만 동동 구를 따름이다. 올 상반기 주택 거래량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6개월 동안의 거래량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사한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46만 5000건으로 집계됐다. 20008년 상반기의 68만 건 보다 30%나 떨어진 수치다. 이는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보다 더 열악한 상황임을 말해 주고 있다. 장밋빛 꿈을 꾸며 빚을 내서 집을 샀던 사람들이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내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서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고 했다. 폭염의 계절- 아무리 잠을 이루지 못할 요소가 많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수면을 통한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경제 불안은 혼자의 <생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