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를 향한 소년 같은 설렘이 가득해서 일까. 12시간의 긴 비행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때때로 요동치는 비행기의 흔들림도, 이스탄불에 대한 기대와 흥분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비행기는 타임머신을 탄 듯 시계 바늘을 무려 일곱 시간이나 거꾸로 돌리게 했다. 가는 세월 막을 자 없다는데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도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어둠이 깔리는 오후 여섯 시 쯤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힘차게 내려앉았다.

 우리와 가까워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왠지 정(情)이 느껴지는 나라 터키-
필자는 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에 첫발을 내딛었다. 밤이라고 하기는 아직 이른 시각이었지만, 밤공기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초겨울 날씨였다. 이스탄불은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다. 겨울은 온난 다습하여 비가 많이 내리고, 때때로 눈도 내린다.

 그 옛날 콘스탄티노플이 역사 속에 파묻히면서 스탄티노플->스탄불->이스탄불로 완성되기 까지 수많은 사연들이 얼룩졌을 듯싶다. 아무튼, 이스탄불은 2000년이 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쉬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도시이자,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도시의 속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탁심 광장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광장은 생각보다 작았으나 중앙에 공화제 기념탑이 있고 지하철 탁심 역이 있으며, 골목길 곳곳에는 해묵은 역사와 문화가 잔뜩 깔려 있었다.

 이른 아침인지라 탁심 광장에는 사람보다 비둘기들이 더 많이 모여 있었다. 비둘기들은 몇몇 관광객들이 먹이를 던지자 생존을 위한 전투자세로 날갯짓을 했다.

 광장을 돌아온 후 필자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이스탄불 시(市)의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길이 1,073m)는 세계적인 현수교로 손꼽힌다. 택시 운전사는 '현수교를 넘어 아시아 지역으로 가자'는 필자의 제안을 흘려버리고, 필자의 의도와는 다른 곳에 내려놓고 훌쩍 떠나버렸다. 20분 쯤 걸어서 보스포루스 해협에 도착하자 다리 아래에는 터키의 토속 음식점들이 즐비했고, 피부색이 각각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보스포루스에서 노니는 즐거움이란, 거대하고 역사적이고 방치된 도시 속에 살면서 깊고, 힘차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자유와 힘을 당신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출신 세계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글귀와 해협의 상황들이 오버랩됐다.

 "보스포루스의 급류에서 빠르게 여행하는 여행객은 복잡한 도시의 더러운, 연기, 소음의 한가운데서 바다의 힘이 자신에게 전이(轉移)되고, 그 모든 군중 · 역사 · 건물 속에서 여전히 홀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의 한 대목을 연상하면서, 필자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인 해협을 보고자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은 유럽 해안을 거슬러가다가 흑해 입구에서 뱃머리를 돌려 아시아 해안을 따라 뒤돌아 왔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자연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 · 집 · 나무 · 성벽.....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1973년에 완공 되었다는 보스포루스 다리 위에는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었고, 다리 밑에는 여러 종류의 배들이 물결 따라 흐르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 해협인 보스포루스! 

 작가 '오르한 파묵'은  '보스포루스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도시와 삶을 건재하게 만드는 무한한 어떤 선(善)과 긍정의 원천이다'면서,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갈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최악의 삶이 아니다'고 했다.

 필자도 보스포루스의 산책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봤다.

 "삶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어.  보스포루스를 산책하면서 깊고, 힘차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자유와 힘을 마음 속에서 느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