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늦더위가 때때로 기승을 부리지만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에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더불어 미당 서정주의 시(詩) '국화 옆에서'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책 '국화와 칼'이 연상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한 송이 국화꽃이 꽃망울을 터트릴 때 까지 봄 소쩍새의 슬픈 울음을 들어야 했고, 여름 먹구름 속의 천둥과 비바람, 가을의 차가운 무서리를 견디어야 했던 지난(至難)한 세월을 담고 있는 서정시(抒情詩)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화와 칼'은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일본에 대한 고적적인 필독서로 자리하고 있다. 제목의 '국화'는 일본 천황가의 문양(紋樣)으로 천황제의 나라인 일본을 상징하고, '칼'은 무사(武士)를 지칭함이다.
 어찌했던 최근에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화꽃에 둘러싸인 채 사람들과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물론 싫어했던 사람들도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고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인간은 언제부터 고인(故人)의 영전에 꽃을 바쳤고, 그것도 국화(菊花)를 바쳤을까? 학자들은 망자(亡者)에게 꽃을 바치는 풍습은 원시시대에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리학자인 크리스 라반(Chris Ravan)과 쥬디 윌리암스(Jeudie Williams)는 "원시인간인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함께 대량의 화분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당시의 원시인들도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쳤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장례식장에서 꽃을 바치는 풍습은 길고 긴 역사를 통해서 오늘에 이른 듯하다. 그러나, 꽃을 바치는 풍습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 · 벨기에 등 라틴 문화권에서는 국화를 사용하고, 영국 · 미국 ·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미문화권에서는 장미나 백합을 사용한다. 영어로 크리스산트멈(chrysanthemum)을 줄이면 멈(mum)이라고 불리는 언어적인 유사성 때문이란다. 물론 우리나라 · 일본 · 중국은 국화를 바친다.(중앙 선데이)

 국화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옛 명절인 중양절(重陽節)도 국화와 많은 관련이 있다. 위키 백과를 통해서 그 유래를 알아본다.
<1년 중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에는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1월 1일, 5월 단오(5일), 7월 칠석(7일) 등을 명절로 지내왔다. 중양절(음력 9월 9일)이 되면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읊거나 산수를 즐겼다. 또한 가정마다 화채를 만들어 먹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이날 제비들은 따뜻한 강남을 향해 떠나고 뱀과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갔다.> 국화가 단순한 감상의 꽃이 아닌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국화는 장수와 부귀의 상징이자 인고와 지조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조 후기의 문신 이정보는 일찍이 국화의 절개를 이렇게 읊었다.
"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러한 국화가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죽음이 생의 마감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국화를 덮고 잠자다가 부활하라는 신앙적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고인들의 영전에 바치는 국화 한 송이라도 정성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