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의 이혼 건수가 11만 6,500건이라고 한다. 이를 연령별로 보면 40-44세가 22,200건으로 이혼을 가장 많이 했다. 직장에서 중추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중견 간부인 40대 가장들이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인 것 같다. 가족을 위해 회사에 충성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자신을 잘 이해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이다.

또한 아버지들은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스러운 자식들도 아버지를 '돈 벌어다주는 존재'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44%가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은 '재력뿐이다'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버지의 생활비 부담률은 95.5%로 세계 1위에 올라있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아버지와 의논한다'고 답한 경우는 '4%에 불과하다'는 초라한 수치(數値)다(위클리 경향). 자신의 아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아버지들- 참으로 불쌍한 가장들이다.

가족은 같은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하나의 덩어리로 형성된 소집단이다. 특히, 우리의 전통 가족은 혈연적 수직구조로 형성되어 온 친족집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가족치료사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는 <가족>이라는 책에서 "가족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덕스러운 사람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가족의 개념'을 독특하게 인정하고 있는 한 일본인이 있다. 다고기치로(多胡吉郞, 53세)라는 소설가다.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우리말을 아주 잘한다. 다고(多胡) 씨는 1980년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에 입사하여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는 한·일 도예프로그램 제작과정(1983년)에서 도예가 조성주 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들의 인연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다고(多胡) 씨는 조성주 씨 가족과의 인연을 소재로 한권의 책을 엮어 내기도 했다. 어느 회사의 광고문구와 흡사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21세기 북스)이다. 그는 이 책 외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애절한 사연들을 담은 '야나기 가네코의 조선을 노래하다'라는 소설을 정성스럽게 빚어냈다. 감동의 연속이다.

다고기치로(多胡吉郞) 씨는 조성주 씨 부부에게 '형님·형수님'이라고 호칭하고, 아이들은 '다고(多胡)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는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경기도 이천의 형님 집으로 줄달음친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는 '조성주 씨 가족을 만나면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풍요로움이 있다'고 했다.
 "도쿄의 일상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엇-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풍요로움이 조성주 씨를 비롯한 한국의 가족들에게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고(多胡) 씨의 말이다.

 일본인 다고(多胡) 씨가 한국에 '또 하나의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는 '한국과 한국인의 정(情)의 세계는 독특하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한국적인 정의 세계와의 공명·공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가족들은 정의 세계와 공명·공감을 외면하고 있다. 가슴속에 자리한 '원망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자인 미국의 딕 티비츠(Dick Tibbits) 박사는 <용서의 기술>에서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계속적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다. 원망하는 마음을 품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기쁨을 생성해야 할 에너지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 소모된다면 자기스스로가 쇠잔(衰殘)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다고(多胡) 씨는 '사람은 곧 사랑'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한국말의 '사람과 사랑'은 어원이 같다"고 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불볕더위를 식히는 청량제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