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총독부의 광화문 철거를 반대했고, 조선의 민속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924년 경성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고, 이조도자기와 이조미술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인 '야나기 가네코(柳兼子)'는 192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음악회를 개최하여 시름에  빠져있던 조선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랬다. 이 야나기 씨가 창간한 문예잡지가 백화(白樺, 일본 명: 시라카바)이다. 백화(白樺)는 바로 자작나무를 일컫는다. 조선의 백자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야나기 씨는 자작나무처럼 순수함이 묻어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한 서정 시인으로 손꼽히는 백석(白石, 1912-1995)도 일찍이 '백화(白樺)'라는 시(詩)를 썼다. 그의 시는 산골의 서정과 자작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톡톡 튄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필자가 얼마 전 찾은 강원도 용평 산골은 '산 너머 평안도 땅'은 보이지 않았지만, 온통 백화(白樺) 즉, 자작나무(the white birch)가 가득했다. 산은 물론이고 마을 어귀의 도로변에도 자작나무들이 즐비했다. 자작나무 사이로 살포시 얼굴을 내민 골프장 안내 간판도 '자작나무 언덕(birch hills)'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작나무를 보면 떠오르는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가 열연했던 <닥터 지바고>다. 실제로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은 장관이다. 필자가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브르그(성스러운 페테르의 도시라는 의미)'를 달리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적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 자작나무는 "러시아의 상징이자 아름다움이며, 사랑 그리고, 러시아 처녀의 상징"이라 한다. 러시아에 자작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싶다.

아무튼, 자작나무는 생김생김이 순수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깊은 산속 양지 바른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자작나무는 키가 20미터에 달하고 나무껍질은 흰색이다.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껍질로는 이뇨제·진통제·해열제 등의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쓰임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한 자작나무 숲은 강원도의 자랑거리다. 강원도의 자랑거리는 자작나무 숲만이 아니다. 울창한 숲속에서 뿜어내는 엄청난 산소량이다. 강원도 산림의 산소량이 우리나라 전체 산소량의 21%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지역적인 특성을 활용하여 강원도가 자연의 산소길, 자전거길 3,000리를 조성한다는 소식이다. 삼척에서 부터 고성까지 연결하는 동해안 길을 비롯하여 백두대간길, 남한강길 등 숲길을 만든다는 것이다.

 김진선 강원도 지사는 "관광, 건강, 휴양, 레져 스포츠를 특화시키는 세계적인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면서, "역사와 문화를 느끼는 산소길·자전거길도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고 했다. 강원도의 자랑거리가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이러한 21C형 개발계획은 울창한 숲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연은 소중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자작나무(白樺)처럼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가구를 만들게 해주며, 한약제로도 쓰이는 유익한 식물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나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산에는 그렇지 못한 나무도 많다. 비록 고마운 나무가 아닐지라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발하는 사람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도, '대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굳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