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화물터미널 쪽 길을 따라 달리다가 도로변 골프장 일대에 만발한 붉은색 아카시아를 보고 한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이파리의 생김생김은 아카시아와 똑같았으나, 꽃의 색깔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꽃향기도 기존의 아카시아와 비슷했지만, 줄기에 있어야할 야무진 가시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북미와 호주가 원산지로 알려진 붉은색 아카시아가 일부 남부지방에서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으나, 영종도까지 올라온 것은 몰랐었다. 이러다가 하얀 아카시아 꽃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아카시아 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아카시아 꽃의 향기가 예전만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봄 날씨가 너무나 덥고 건조하여 꿀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문곡직 양봉업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되었다. 아카시아가 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온이 섭씨 24-27도를 유지해야 하고, 습도도 15%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생명력이 질기다'는 아카시아도 지구 온난화에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둘째는 아카시아가 '불량수목'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꽃망울이 터지려던 지난 5월 중순. 남산의 아카시아 나무 170그루가 송두리 채 잘려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종로구 사직동의 600여 그루와 은평구의 100그루 등 서울시내 수 천 그루의 아카시아 나무들이 같은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서울시가 아카시아 나무를 '불량수목'으로 지목하고 칼자루를 휘두른 것이다.

이 아카시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1년이지만, 일본 강점기 시절에 철도 침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법 많이 심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카시아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발을 붙인 것은 1960년대라고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황폐화된 우리의 산하를 녹화하기 위해서 북미에서 들여왔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아카시아는 순식간에 우리나라의 황토색 민둥산에 푸른 옷을 입혔다. 이처럼 산림녹화의 일등공신이었던 아카시아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용도폐기 되고 있는 것이다(중앙선데이 5/16).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은 아카시아뿐 아니다. 사람의 운명도 아카시아와 마찬가지다. 조직을 위해 공을 세운 일등공신들도 '조직의 슬림화'라는 명분으로 우수수 용도폐기 되고 있다. 이는 타 업종에 비해 건설업의 경우가 더욱 심하다. 길거리에는 건설업 활성화에 목을 빼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용도폐기'는 나은 편이다. 아카시아처럼 '불량수목'으로 지탄을 받고 잘리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아카시아가 다른 식물들에게 방해가 되고 경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콩과 식물인 아카시아 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는 잘 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나,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울창한 숲속에서는 스스로 고사(枯死)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다른 수목들로 부터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환경생태공학과 오충현 교수는 "아카시아가 다른 식물의 발육을 막는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면서, "우리의 산을 푸르고 해주었고, 어려운 시절 땔감을 제공했으며, 지금도 꿀을 제공하고 있는 고마운 나무"라고 했다. 단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에 있는 수령이 다된 아카시아 나무는 안전 관리상 베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아무튼, 아카시아는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에 의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으며, 불합리한 잣대에 의해서 희생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도 서울시의 처사가 다소 성급 한 것 같다. 나무의 생명을 죽이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며, 아카시아를 베어낸 자리를 메우는 일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잘려나가는 아카시아 나무 때문일까? 불현듯 서정윤(52세) 시인의 <아카시아 길>이라는 시(詩)가  떠오른다.
"슬픔이 있는 너의 모습이 좋아라/ 눈물이 흐르는 너의 향기가 아파라/ 호젓한 아카시아 길 홀로 걸으며/ 주렁주렁 늘어진 나의 슬픔을/ 온 산을 덮으며 타오르는데/ 잠시 바람에도 흐느끼는 향기/ 내 마음 그 어디를 찾아 흐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