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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붐' 이라크 아르빌

호텔마다 사업가들로 넘쳐 초대형 쇼핑몰 등 건물 쑥쑥

2007년 10월 10일 (수) 00:00:00

부동산신문

renews@renews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 이라크 아르빌은 우리에게 주로 자이툰부대의 파병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아르빌은 중동의 신흥성장시장(Emerging Market)이 됐다. 이라크 재건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아르빌은 다국적 기업이 몰려드는 새로운 경제 전쟁터로 변모했다.
한국 정부는 2004년 김선일씨 살해 사건 이후 한국인의 이라크 입국을 막았다가 지난 2월부터 아르빌 지역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소수지만 한국인들이 찾고 있다.

◆몰려드는 세계의 사업가들= 현지에서 건설업을 하는 영국인 존스씨는 “지난 3년간 아르빌에서 발생한 테러는 2건에 불과하다”며 “숫자상으로는 런던보다도 적다”고 말했다. 아르빌에 있는 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미국인은 ‘키르쿠크 시멘트 회사 건설계획’이란 제목의 서류를 책상 위에 쌓아놓고 있었다.
2003년 이후 미군은 이라크에서 3700여 명이나 죽었지만, 미국 사업가들은 더 공격적으로 몰려들고 있다. 현지에서 주택사업을 하는 미국계 시그마(Σ) 건설의 짐(Jim) 현장소장은 “올 4월 이라크 미국대사관이 수백 명의 기업인들을 불러 쿠르드 지역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아르빌에는 미국·영국이며 터키·두바이, 노르웨이까지 세계 각국의 400여 개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했다. 그래서 아르빌 시내 호텔 투숙률은 90%가 넘는다. 레바논 기업들은 무려 1조원이나 투자하는 초대형 쇼핑센터를 아르빌 시내에 짓고 있었다.
◆자원쟁탈 경쟁= 전세계 기업들이 변변한 공장 하나 없는 아르빌에 공격적인 진출을 하는 이유는 유전(油田) 때문이다. 쿠르드족 거주지역에는 전세계 매장량의 6%, 이라크 전체의 40%에 달하는 엄청난 유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해 향후 이라크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터키 접경도시 자호(Zakho)는 스웨덴 자원개발회사 DNO가 개발한 유전이 있는 곳이다. 해발 900m의 구릉지대에 원유가 용암처럼 흘러넘쳐 웅덩이에 기름 호수를 만들기도 했다. DNO 현장관리자 타릭(Tarik)씨는 “일반 주민들이 직접 땅을 파 기름을 뽑은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DNO는 2005년 4월 이 지역탐사를 시작해 불과 4개월 만에 유정을 찾았다. 타릭씨는 “지금까지 8개의 유정을 팠고, 지난달부터 시험생산을 시작했다”며 “송유관이 터키와 연결돼 있지 않아, 트럭으로 기름을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을 원한다”= 현지인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높다. 자치정부 고위관료들이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는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방영되고, ‘Corea’가 새겨진 붉은 악마 테이블보가 깔렸다. 쿠르드 관료들은 입을 모아 “한국인은 우리의 친구”라고 말한다. 자이툰 부대의 성공적인 정착이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한국기업의 진출은 미미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쿠르드 정부에 지어주는 병원 등 소규모 건설이 전부다. 한국·이라크 합작법인인 코리쿠르디의 신자리(Sinjari) 회장은 “쿠르드 정부 안에서는 터키나 미국·영국·중국보다 한국에 훨씬 더 우호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한국 기업인의 진출이 너무 없어서, 자치정부 안에서도 답답해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 5년전 500달러짜리 아파트 최근 1만5000달러까지 치솟아= ‘돈을 벌고 싶다면 부동산에 투자하세요.’ 요즘 아르빌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방 3개짜리 아파트가 2002년엔 500달러였는데, 요즘엔 1만5000달러나 나간다고 한다. 쿠르드 자치지역은 온통 공사판이다. 아르빌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산골 마을까지 집을 새로 짓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 탄압으로 30여 년간 억제됐던 개발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물가도 폭등하고 있다. 2002년 10센트 정도했던 토마토 1㎏이 요즘에는 80센트에 달한다. 지난 91년까지만 해도 쿠르드 지역의 백만장자 수는 단 5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수천명 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뜨거운 부동산 시장= 아르빌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아메리칸 빌리지’. 미국계 건설사 ‘시그마’가 ‘아메리칸 스타일’임을 선전하면서 집 장사를 곳이다. 현장소장 짐(Jim)은 “398채의 주택을 지어 분양 중”이라며 “이라크 남부 나시리아 사람들도 안전한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와서 집을 계약한다”고 말했다.
허허벌판에 지어지는 집의 가격은 놀라울 정도다. 600㎡(약 181평) 넓이의 2층 집이 우리 돈으로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집을 사는 사람은 주로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라고 했다. 벌써 75채가 팔려나갔다. 아르빌 곳곳에 ‘영국 빌리지’며, ‘이탈리아 빌리지’가 세워지고 있다. 터키 업체가 16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공사를 따냈고, 아랍에미리트(UAE) 투자자들도 드림시티라는 대규모 주택개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르빌의 일반 주택 월 임대료는 100만~200만원에 이르고, 차량 한 달 렌트비도 50만~7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다 경호비용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돈이 들 정도다.
◆바그다드의 혼란은 아르빌의 이익=아르빌의 부동산 시장이 폭발하는 것은 이라크 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쿠르드 자치정부 지역에서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인정된다.
약삭빠른 두바이는 3800억원을 들여 아르빌 인근에 ‘미디어 시티’를 짓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몰려 있는 세계 언론들을 아르빌로 불러들여 임대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호텔·카지노까지 엮어 종합레저타운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르빌 신공항 건설현장. 공사 책임자 사르왓 카림(Karim)씨는 “당초 연간 이용자 150만명 규모로 설계했던 것을 250만명으로 변경했다”며 “이라크의 허브(거점) 공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오스트리아 항공이 아르빌에 취항한 데 이어 요르단·두바이로 향하는 국제선도 늘어나고 있다.
바그다드가 혼란에 빠지면서 이라크 지역의 국제 전시회도 이젠 아르빌에서 열린다. 2005년 처음 열린 전시회엔 35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가 2006년엔 800개 회사로 늘어났을 정도다. 올해도 오는 10월 말에 개최될 예정이다.
◆위험은 커= 물론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부족이다. 쿠르드 정부가 땅 밑에 깔고 앉아 있는 유전이나 광물자원은 엄청나다. 그러나 이를 개발해 현금화하기까지는 최소 3~5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 돈이 없으니, 민간기업이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얼마인지, 경제성장률이 얼마인지 등 기초 통계조차 없다. 쿠르드족을 둘러싼 중동의 정치구도도 발목을 잡고 있다. 쿠르드 족은 이라크뿐 아니라, 인근 이란과 터키에 흩어져 약 3000만명이 살고 있다. 터키 내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이 거세지자, 터키 정부는 지난 6월 쿠르드 자치정부 때문이라며 접경지역에 병력을 전진 배치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라크에 투자할 수 있을까= 이라크에 가서도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을까. 이라크의 부동산값은 미국의 폭격이 있을 후 완전 헐값이 됐다. 가치가 극도로 하락돼 있는데 투자가치가 있을까.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이라크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IMF 구제 금융하의 한국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경제적으로 극한 격변기의 상황에 있을 때 누가 자신 있게 국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었을까. 부동산 시장이 안정돼 있지 않고 부동산 이외에 다른 안전한 (투자 리스크가 적은) 투자 대안들이 많이 널려 있는데… 하지만 당시에도 해외부동산 투자자들은 국내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치를 인정했다. 그때 그들은 많은 국내 부동산을 구입했다. 해외투자자들로서는 IMF 구제금융 하에서도 국내 부동산 시장의 미래가치 및 잠재가치를 보고 부동산을 매입해 나갔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 못지않게 확고한 정치적 보호와 장기적 경제회복을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 이라크에서의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현 단계에서 점검해야할 사항은 경제적 회복 여부보다 정치적 보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면 전후(戰後)국가로서 경제회복은 중장기에 걸쳐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정치적 보장과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된다면 지금이라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문윤홍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