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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수행능력과 불확실성
2002년 08월 01일 (목) 00:00:00 노영기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시장경제 최대의 적은 불확실성이다. 미국 증시가 폭락하는 이유는 바로 기업 회계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미국 증시의 부침은 당분간 계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증시가 폭락장세인 미국증시와 한 두어 번 따로 놀았다 해서 한국경제의 기초(fundamental)가 튼튼하니, 그래서 금년 후반기의 성장률이 5∼6%대는 될 것이라느니 하는 말이 최근 특히 정부 여권에서 부쩍 나오고 있다. 간활한(간교하고 교활한) 눈 속임이며 대단히 무책임한 말이다. 한국의 불확실성은 미국의 그것보다 크고 질이 나빠 국민경제의 앞날이 심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불확실성은 투명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기업회계가 거짓이라는 충격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기업회계는 미국보다 나은 것인가. 무너진 대우의 분식회계사실과 오너가 진시황인 재벌그룹의 경영관행으로 미루어 보아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너무 오래 지속되어 관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둔감한 상태에 있는 것일 뿐이다.
한국은 기업경영의 불투명성보다는 정부 여권으로부터 나와 누적되는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불확실성이 더 고질적이고 큰 문제이다. 주 5일 근무제가 그 좋은 예이다. 노사정 협상이 결렬되었음에도 정부가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로 단독 입법하겠다고 밀어부치는 것은 일종의 오기이며, 제조업의 지원산업인 금융이 먼저, 그것도 담합으로 주5일 근무제를 수용한 것은 아부성 들러리이고, 명백한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주 5일 근무제에 관계없이 연중 무휴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장치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산업구조, 구인난과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등 좀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야할 이유가 분명하다는 아우성을 모르는 척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YS가 OECD가입을 서둘러 막대한 무리와 국익의 손실을 가져온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 내용도 없이 형식적인 선진국이 되는 것이 국정의 지상목표 인가? 등등이 바로 불확실성의 진앙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불확실성의 진앙지는 많다. 서해교전으로 병사가 전사하는데 동쪽 금강산에는 돈 갖다 주기 위한 관광이 줄을 잇고 있다. 물처럼 쓴 공적자금의 반인 80조원을 국민들에게 떠맡기는 상황에서 공적자금을 횡령한 기업인들의 책임은 묻는데 공적자금을 그렇게 난장판으로 집행한 책임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 느닷없이 연예인 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혹시 공적자금 배분에 대통령의 아들이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의혹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값정책 개입의혹과 마늘 파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또 어떠한가? 우선 숨겨 넘기고 때가 되어 문제가 되니까 유관 부서들이 책임을 전가하고자 전 현직 장관들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해명성, 면피성 성명을 날리고 있는데도 청와대가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고 있다면 이는 국정수행능력의 문제이다. 국정 수행이 이렇게 대중을 상대로 간활하면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통치권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국가 총제적인 불확실성이 누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체적 불확실성은 정부 여권의 국정수행능력과 반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치권의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좀체 개선되기 어렵다. 미국으로부터의 불안요인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온갖 권력형 비리, 부정, 부패를 발본색원하는 통치권적 결단으로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불확실성의 뿌리를 도려내는 것이 시급하다. 구태의연한 증시안정, 물가안정, 경기부양 대책 등으로 경기가 정상화되기에는 사회적 가치관의 상실과 신뢰의 붕괴가 이미 시장기구의 작동을 근본적으로 마비시키는 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

프로필
△충남 공주 출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경제학 박사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장 △UNDP 자문위원으로 말레이시아, 아랍 에미레이트 등 경제발전자문 △중앙중소기업 연구소장(현) △중앙대학교 경제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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